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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해 남자친구와 사는 여중생, '쉼터 버스' 다녀간 뒤…
글쓴이 : 홈지기
      조회 : 2,918회       작성일 : 2015-11-29 09:28  
'쉼터 버스' 탄 길거리 청소년, 마음을 열다

정경화 기자  입력 : 2015.11.27 03:00

['위기의 아이들' 돌보는 이동 쉼터 르포]

10년간 운영… 전국 10대, 매일 오후 4~12시 운영

버스 안에서 독서·게임·간식… 상담사에겐 속얘기 털어놔

문제 생길 땐 직접 도움 요청, '학교 밖 청소년' 복학하기도



진눈깨비가 내리던 25일 밤 서울 신림동 봉림교 위에 45인승 버스가 서 있었다. 짙은 남색 버스 외부에는 어린왕자와 별이 그려져 있고 '너를 위한 작은별'이라고 쓰여 있다. 여성가족부와 지자체의 지원으로 2005년부터 운영되어 온 청소년 이동 '쉼터 버스'다.

밤 10시 30분. 버스에 올라탄 윤지(가명·18)는 내내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검은 모자를 푹 눌러썼고, 눈화장이 짙었다. 기자에게는 "나이는 열여섯이고, 가출한 게 아니라 엄마 허락받고 남자 친구랑 산다"고 말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윤지는 2년쯤 전에 알코올중독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집에서 나왔다. 학교도 그만뒀다. 경기도 시흥에서 가출팸(패밀리의 준말) 생활을 하다 올해 초 신림동으로 넘어왔다. 지금은 다세대주택 반지하 단칸방에서 또래 가출 남학생 3명과 같이 산다. 생활비는 한때 '조건 만남'(성매매)으로 벌었다고 했다.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 신림동 일대에서 쉼터 버스 상담가들이 거리 상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국의 쉼터 버스 10대는 청소년 밀집 지역을 찾아다니며 ‘학교 밖 청소년’ 또는 가출 청소년을 찾아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보호 시설로 인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매주 수요일 신림동 봉림교에서 청소년들을 기다리는 쉼터 버스.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 신림동 일대에서 쉼터 버스 상담가들이 거리 상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국의 쉼터 버스 10대는 청소년 밀집 지역을 찾아다니며 ‘학교 밖 청소년’ 또는 가출 청소년을 찾아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보호 시설로 인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매주 수요일 신림동 봉림교에서 청소년들을 기다리는 쉼터 버스. /서울시립청소년이동쉼터 제공
윤지는 이런 얘기를 쉼터 버스 상담사에게 털어놨다. 남자 친구가 여러 차례 상담을 거쳐 공부를 시작하고 지난 8월 말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고 했다. 가출 청소년 지원 대상자로 선정돼 매주 생필품을 지급받으면서 성매매를 관뒀다고 했다. 스마트폰만 쳐다보던 윤지는 "남자 친구는 이제 (음식) 배달 시작한대요. 저도 다시 공부할 거예요. 내년에 중 3으로 복학하려고요"라고 말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또 올게요!"

쉼터 버스는 매주 수요일 오후 4시부터 밤 12시까지 같은 자리에서 청소년들을 기다린다. '학교 밖 청소년' 또는 '가출 청소년'을 발견해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보호 시설에 연계하는 '길거리 위기 청소년 발굴' 활동이다. 매주 봉림교 위에 세워진 버스를 보기만 하다가 '오늘도 왔네?' 하며 갑자기 버스에 올라타는 청소년들도 있고, 거리에서 나눠준 쉼터 버스 홍보물을 보고 찾아오기도 한다. 버스에 타면 과자와 음료수를 먹으며 만화책을 읽거나 게임을 할 수도 있다.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말하고 싶지 않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된다. 간이 침대에 누워 잠깐 눈을 붙일 수도 있다.

고3이지만 이번에 수능은 보지 않았다는 영준(가명·18)군은 오후 9시쯤 버스에 타서 2시간쯤 게임을 하고 돌아갔다. "그냥 춥고 심심해서 왔어요. 집에 가봤자 아무도 없거든요." 이런 버스는 전국에 10대 있고, 그중 4대가 서울에 있다. 요일을 정해 청소년들이 자주 모이는 건대입구, 왕십리, 천호동 등에 찾아간다.

쉼터 상담사들과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 관악경찰서 직원들은 조를 짜 거리 상담에 나서기도 한다. 밤 9시 반 컴컴한 골목에 숨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학생 4명에게 이백형 경위가 다가갔다. "춥지? 담배 피우지 말고 사탕 먹어라"며 막대사탕을 내밀었다. 경계하는 눈빛을 보이던 이들은 멋쩍게 웃더니 담배를 껐다. 인근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었다. 이 경위는 "학교는 잘 다니냐? ○○ 선생님 알지? 봉림교 위에 버스 있으니까 심심하면 놀러와"라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 윽박지르거나 혼내면 다음에는 저를 보기만 하면 피할 것"이라며 "최소한 9번은 얼굴을 봐야 저를 친한 동네 형이라고 느끼고 긴급 상황이 생길 때 도움을 청한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는 올해 전국의 청소년 밀집 지역에서 거리 상담을 벌여 청소년 15만7066명을 만났다. 이 중 쉼터 버스에서 상담을 받은 청소년이 12만423명, 보호 시설에 인계되거나 집으로 돌아간 청소년은 3만5643명이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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