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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소하면 거리로 돌아가는 삶 “수갑 찼을 때에야, 아 내가 또…”
글쓴이 : 청소년쉼터
      조회 : 914회       작성일 : 2018-12-11 11:09  

그곳에 ‘거리의 아이들’이 있었다. 경기 의왕시 서울소년원과 안양시 서울소년분류심사원. 서울소년원의 다른 이름은 고봉중·고등학교다. [한겨레] 기자가 1주일간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만났다. 그들이 소년원에 오게 된 사연, 소년원 생활을 살폈다. 이곳은 성인 교도소보다 더 철저히 무전유죄 원칙이 관철되는 곳이다. 한번 소년원에 들어온 아이들은 다시 들어올 확률이 높다. 이 아이들을 다시 ‘거리’로 내몰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할까. 3회에 걸쳐 실태와 대안을 싣는다.

상호(가명·17)는 소년원행을 예감했다. “10호 처분 받고 소년원 가서 자격증 따는 것도 나쁘지 않아.” 소년분류심사원(심사원) 조사관이 상호의 이력을 보고 말했을 때였다. 올해 초 소년원 장기입소 처분(10호)을 받았다. 고봉중·고등학교(서울소년원) 면담실에서의 대화가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상호는 비로소 속내를 조금 털어놨다. “(소년원 밖으로) 나가서 어디서 살지 아직 안 정했어요.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돈 벌어야죠. 지금은 한푼도 없어요.” 어두운 표정을 짓던 상호가 처음으로 ‘피식’ 웃었다.

그의 삶 속 첫 기억은 보육원이다. 어릴 적 헤어진 부모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그는 옮겨 다니는 데 꽤 익숙하다고 했다. 서울 인근의 소도시에서 보육원 여섯곳을 옮겨 다녔다. 역시 다른 보육원으로 옮겨 다니던 형과도 소식이 끊겼다.

보육원이든 학교든, 상호가 의지할 어른은 없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맥락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 부당한 평가를 받거나 오해받았던 일이 많았던 것으로 추측됨.” 상호를 여러차례 면담한 상담 전문가는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렇게 썼다.

소년원에 왜 들어왔는지 묻자 상호는 줄줄 읊는다. 절도, 사기, 보호관찰 위반…. 얼핏 무시무시하다. 자주 보육원을 이탈했다. 가출이 아니라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를 찾아간 것이라고, 상호는 생각했다. 돈이 필요했다.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는 열심히 일해 돈을 번 적도 있다. 고깃집에서 불판을 갈고 서빙을 했다. 일당 7만원씩 받았다. 일당은 거리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썼다. 주머니는 금세 홀쭉해졌다. 오토바이를 훔쳐 팔고 상점을 털었다. 허위 매물로 중고 매매도 시도했다. 여러차례 4호(단기 보호관찰), 6호(소년보호시설 위탁) 등의 소년보호 처분을 받았다. 그러다 이곳에 왔다. “밖에 있을 때 제일 의지하던 사람이 친구였어요. (소년원 오고) 처음에는 친구들 보고 싶었는데, 이제 상관없어요. 밖에 나가도 자주 안 만나려고요.” 내년이면 18살이 되어 소년원을 나가야 하는 상호 앞에 언제나 그랬듯 혈혈단신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아, 내가 또 수갑을 차고 있구나”

경훈(가명·17)이의 부모는 경훈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갈라섰다. 경훈이는 아버지 집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생업에 바빴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하던 작은 사업이 부도나면서 경훈이 삶에 그늘이 졌다. 보육시설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동네 형들’과 어울리게 됐다. 형들과 폭행·절도에 휘말려서 중학교 때 한차례 단기 소년원 입소 처분을 받았다.

경훈이의 관심사는 운전이었다. “편해요. 주변 형들도 타서요. 마음대로 어디 갈 수도 있고요.” 무면허로 렌터카를 빌려 운전했다. 오토바이를 사기 위해 음식점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일당 10만원씩을 모아 오토바이를 샀다. 함께 달리던 친구가 사고가 났고, 경찰이 출동하면서 그의 무면허 운전이 발각됐다. 이번에는 장기 소년원 입소(최대 2년) 처분이 내려졌다. “다시 수갑 찼을 때에야, 아 내가 또 이걸 차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상호와 경훈이의 사연은 소년원 아이들 상당수의 삶과 겹친다. 소년원 재원생은 셋 중 하나꼴로 소년원에 입소했던 경험이 있다. 퇴소한 뒤 1년 이내 재입소하는 경우도 14%나 된다(2016년 기준). 소년원에 재입소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보호관찰 위반’이 많다. 보호관찰은 특정 프로그램 수강과 면담, 야간 외출 제한 등의 범죄 예방 장치다. 소년원을 퇴소할 때 “일정 기간 보호관찰을 받겠다”고 약속하고 나가는 것이다. 기자가 만난 소년원생 11명 중 6명이 보호관찰을 위반한 경험이 있었다. 서울 지역 보호관찰소 관계자는 “보호자의 관리가 부족한 아이들이 한번 소년재판을 받으면 계속 소년원을 드나드는 경우가 많다. 퇴소하면 원래 생활습관대로 낮과 밤이 바뀌며 친구들과 놀게 된다. 결국 보호관찰을 위반하고, 다시 소년원에 오는 것”이라고 했다.

보호자가 있다고 해서 모두 괜찮은 건 아니다. 고봉고에서 만난 경섭(가명·17)이는 집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했다. “아빠랑 저랑은 진짜 안 맞아요. 아빠는 예전에 조폭이었대요. 온몸에 문신이 있는데, 제가 창피해서 목욕탕도 같이 안 가거든요. 어릴 때 (아빠한테) 되게 많이 맞았어요. 퇴소해도 아빠랑은 안 살 거예요. 나중에 할아버지나 여자친구랑 같이 살고 싶어요.” 그에게 퇴소는 또 다른 감옥으로 가는 길이다. 경섭이도 이번이 소년원 입소 두번째다. 아버지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가출한 상태에서 수강명령과 상담교육 등 보호관찰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다시 소년원에 들어왔다.

■평범하게 살기가 쉽지 않은 아이들

퇴소 이후 마땅히 생활할 공간이 없거나 보호자가 없는 청소년을 돕는 생활관(자립관)과 취업을 돕는 전문기관들이 있다. 하지만 소년원을 퇴소한 아이들은 단체 생활을 꺼린다. 경력 20년의 고봉중·고 선생님은 재입소하는 학생들 얘기에 한숨부터 쉬었다. ‘이 친구는 나가면 범죄 안 저지르고 잘 살 거야’라고 철석같이 믿고 내보낸 아이를 다시 소년원에서 만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소년원에서 나갔던 애들이 다시 오면 되게 안타까워요. 누군가한테 고민 털어놓고 의지할 어른이 차려준 밥 먹고요, 남들 하듯 그렇게 평범하게만, 그렇게만 있어도 다시 소년원에 오지 않을 것 같은데….”

소년원을 떠난 청소년들에게 평범한 삶은 당연한 게 아니다. 범죄를 저질렀던 ‘거리’로 돌아간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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