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했는데 잘 곳이 없어요.” X(구 트위터)에 ‘가출’을 검색했을 때 흔히 보이는 글이다. 집에서의 시간이 괴로워 거리로 나온 가정 밖 청소년은 계속해서 지낼 곳을 찾아 나선다. △가출팸 △고시원 △찜질방 등 가출과 함께 뜨는 키워드는 갈 곳 없는 가정 밖 청소년이 겪는 주거 문제를 보여준다. 부족한 주거지원으로 인해 가정 밖 청소년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알아보자.
돌아갈 집이 없는 가정 밖 청소년
가정 밖 청소년은 가정 해체, 가정 내 △갈등 △방임 △폭력 등의 사유로 집을 나온 청소년을 말한다. 대부분의 가정 밖 청소년은 가정 내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한 생존형 가출로 발생한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1년 위기청소년 지원기관 이용자 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쉼터 및 청소년자립지원관 이용 청소년 681명 중 72.1%가 부모로부터 신체폭력을, 72.9%가 언어폭력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원가정으로 돌아갈 수 없는 가정 밖 청소년은 혼자 힘으로 주거지를 구할 수 없어 청소년쉼터에 입소하거나 ‘가출팸’이라 불리는 무리에 들어가 생활하게 된다.
자유롭지만 위험한 가족, 가출팸
가출과 팸(family)의 합성어인 가출팸은 3명 이상의 가정 밖 청소년이 모여 함께 거주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일시적인 집단이지만 잠시나마 서로에게 일종의 가족이 된다. 전북대 사회학과 추주희 교수는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가정 밖 청소년은 가출팸을 통해 또래 집단에 의지하며 유대감을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은 애정을 주고 돌봐주는 청소년을 ‘엄마’라고 부르며 가족적 모습을 실현하기도 한다”며 “이는 보호가 필요한 청소년에게 돌봄의 역할이 필수적임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가정 밖 청소년은 가출팸을 꾸려 심리적으로 의지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자원을 공유하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이러한 가족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가출팸의 삶이 안정적으로 존속되기는 쉽지 않다. 원룸이나 고시원 등 주거 시설을 구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지만 만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친권자의 동의 없이 일자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립청소년이동쉼터(서남권) 안수경 소장은 “가정 밖 청소년은 주로 나이를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일용직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활비를 번다”며 “고정 수입이 부족해 안정적으로 월세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결국 월세가 밀린 가출팸은 주거지를 잃고 해체되거나 거리로 내몰리기도 한다. 여성가족부의 ‘2021년 위기청소년 지원기관 이용자 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 밖 청소년의 29.8%가 건물이나 길거리에서 노숙을 경험해 본 것으로 나타났다.
주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는 가정 밖 청소년은 범죄에 노출되기도 한다. SNS를 통해 숙식을 제공하겠다며 미성년자를 유인해 성착취 등 범죄를 저지르는 ‘헬퍼’ 문제와 가출팸 내부에서 생활비를 위해 범죄를 알선하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지난 7월에는 가출팸 구성원에게 성매매를 지시하고 금전을 착취하는 등 가혹행위를 일삼은 가정 밖 청소년들이 기소되기도 했다. 이에 추 교수는 “가출팸의 유지를 위해 이용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의지할 곳이 없는 가정 밖 청소년은 가출팸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범죄에 노출된다”고 밝혔다.
청소년쉼터, 안전하지만 한계 지녀
가정 밖 청소년은 안전한 주거 시설에서 지내기 위해 청소년쉼터를 찾기도 한다. 만 9~24세의 가정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청소년쉼터는 보호기간에 따라 △일시쉼터(24시간~7일 이내) △단기쉼터(3개월 이내) △중장기쉼터(3년 이내)로 구분된다. 청소년쉼터는 가정 밖 청소년에게 생활 지원을 통해 주거 시설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금융 교육 △인턴십 △정부 지원 정책 안내 △학업 지원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의 자립을 돕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청소년쉼터는 모든 가정 밖 청소년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우선 원가정과 관계가 단절된 가정 밖 청소년의 경우 친권자 연락 제도로 인해 입소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민법 제914조에 따르면 미성년자는 친권자가 지정한 장소에 거주해야 하며,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미성년자인 실종아동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보호할 경우 처벌의 대상이 된다. 이에 따라 청소년쉼터는 입소하는 청소년의 친권자에게 연락을 취해 동의를 구해야 하며, 이때 친권자의 동의를 받지 못한 청소년은 72시간 이내에 청소년쉼터에서 퇴소해야 한다. 청소년쉼터의 수와 수용 인원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안 소장은 “현재 전국 138개소의 청소년쉼터에서 평균적으로 각 10~30명의 청소년을 보호하고 있는데, 이는 가정 밖 청소년의 수와 비교했을 때 매우 부족한 편”이라며 “일부 지역은 *님비현상으로 청소년쉼터 설립을 반대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청소년쉼터 내 열악한 시설도 문제가 된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 2020년에 발표한 ‘청소년쉼터 입소청소년 및 종사자 실태조사연구’에 따르면 한 침실 공간에 평균 4명의 청소년이 생활하고 있어 입소생 간 갈등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리되기 어려운 상황임이 드러났다. 또한 단기·중장기쉼터 이용 청소년이 가장 바라는 서비스는 1인실 주거 공간 확충(17.6%)으로 나타났다.
가정 밖 청소년에 대한 주거지원 확대돼야
가정 밖 청소년은 한 주거지에서 오래 지내기 어려운 불안정한 생활로 인해 자립 준비를 꾸준히 이어 나가지 못한다. 당장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장기적인 취업 준비에 소홀해지며, 잦은 주거지 이동으로 관계 단절과 학업 중단의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가정 밖 청소년의 불안정한 주거 문제는 단순히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성년이 된 후 자립까지 어렵게 하는 만큼 이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정책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가정 밖 청소년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청소년쉼터의 시설 개설 및 확충이 필요하다. 안 소장은 “국가 차원에서 청소년쉼터에 대한 예산을 늘려 기존 청소년쉼터 시설 내실화와 새로운 시설 확대가 병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시적인 보금자리 역할을 하는 청소년쉼터의 개선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립을 돕는 주거지원도 필요하다. 실제로 미국은 가정 밖 청소년에게 18개월 이상의 주거 공간과 함께 △교육 △정신보건 △취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영국은 만 18세 이상만을 노숙인으로 규정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가정 밖 청소년을 노숙인보호법의 대상으로 삼아 우선적인 주거를 지원하고 있다. 이렇듯 미국과 영국 두 국가 모두 가정 밖 청소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원가정으로의 복귀가 어려운 가정 밖 청소년이 자립할 수 있도록 주거지원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가정 밖 청소년에게 보증금 없이 주거지를 지원하는 소년소녀가정 전세주택지원 제도를 청소년쉼터 퇴소 예정인 청소년에게까지 확대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청소년쉼터 입소 경험이 없는 가정 밖 청소년은 이용할 수 없으며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적은 정책이라는 지적이 존재한다. 또한 사회복지사가 7명 이하의 가정 밖 청소년과 일반주택에서 함께 생활하는 그룹홈 제도 역시 적은 예산과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원활한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추 교수는 “우리나라는 가정 밖 청소년을 위한 주거정책의 수가 적고 예산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가정 밖 청소년의 진정한 주거권 보장을 위해서는 주거지 마련과 함께 그들이 안전하게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전했다. 가정 밖 청소년이 진정한 주거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다양한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님비현상=사람들이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시설이 들어섰을 때 끼치는 여러 가지 위해적인 요소로 인해 근처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꺼리는 현상.